문화는 관치의 대상이 아니다

ai 투자 :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어지럼증을 느끼는 현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하고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무신경함을 마크 트웨인 신드롬이라 한다. 소설가 스탕달이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크로체 성당을 방문했을 때 특이한 경험을 한 것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 마크 트웨인의 무신경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사람도 대상에 대한 배경지식과 경험, 성향에 따라 감흥도 다르기 마련일 것이다.

investing : 원주에는 1963년 개관하여 2006년 폐관한 후 방치되어 있던 마지막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이 있다. 2016년부터 시민들 사이에서 내부시설과 단관극장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아카데미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하며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2020년 춤, 음악, 영화 등으로 원주 시민과 다시 만나는 자리인 <안녕 아카데미>를 열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세상에, 이런 공간이 지금도 남아 있었군요, 학창시절과 연애시절 추억, 아이들과의 추억이 다 여기에 있어요 하는 사람과, 다 헐어내고 멋지게 새로 지으면 몰라도 다 쓰러져가는 구닥다리 건물이 뭐가 좋다고 돈을 들여? 하는 사람 말이다. 공간을 이용한 경험의 유무도 있겠지만 공간을 대하는 가치와 철학이 다른 까닭이다.

멀티플렉스에 밀려 대부분 사라졌지만 원주에 ‘아카데미’가 남아있고 동두천에 ‘동광극장’이 있다면 전남 광주에는 1935년 개관 후 숱한 위기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865석의 ‘광주극장’이 있다. 지금은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지원 없이는 정상운영이 어렵지만 89년의 명맥을 이어온 역사성과 장소성은 광주시민과의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시사회나 행사에 참여한 외지인들에게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과거 단관극장은 영화만 상영한 곳이 아니었다. 어디나 그랬듯 원주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던 시절 영화는 물론 인기가수 리사이틀, 시민 노래자랑, 반공교육, 영화 단체관람, 강연회 등등 다목적 시민 문화공간이었다.

도시의 정체성과 연결되는 단관극장들

한 도시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자리매김되는 것일까. 정체성이란 역사적·문화적 맥락과 닿아 생명력과 지속성을 얻으며, 정주하는 시민의 자긍심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오랜 세월 시민들이 들고나던 공간에는 도시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역사가 축적되어 있고 이 총합이 도시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남루하고 촌스러워도 단관극장이 보존가치가 있는 이유다. ‘아카데미’를 지키자고 했을 때 원주시민들이 열광적으로 호응한 것은 저마다 기억과 추억이 담긴 장소라는 문화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숙의과정 없이 전 정부 지우기를 하고 시민사회의 비판적 목소리를 묵살하듯 원주도 소속 정당이 다른 시장이 선출되면서 과정과 절차를 무시한 채 시민이 주도해온 아카데미 보존사업과 문화도시 사업을 무위로 돌리고 있다. 아카데미 보존사업은 예산부담과 보전가치, 안전등급을 이유로, 문화도시 사업은 용역비 과다집행 등 방만한 운영을 이유로 제시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도 억지임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행정적 재검토라기보다 정무적인 판단에 기인한 정치적 폭력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큰 이유다. 서울을 비롯하여 단체장의 소속 정당이 바뀐 지자체 곳곳에서 비슷한 잡음이 들린다. 중앙부처나 지방정부나 공무원 스스로 그때는 옳고 지금을 틀리다고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단체장 바뀐 후 ‘문화’를 때리는 정치적 폭력

낡고 불편하고 어쩌면 퀴퀴한 냄새도 나는 오래된 단관극장, 사실 없애도 그만이다. 하지만 시민이 주도해온 사업을 대하는 태도는 도시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특히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해 오며 결실을 맺기 시작한 자생적인 문화활동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전 정부에서도 회의적이었던 사업을 추진해온 ‘원주아카데미 보존추진위’는 21회 원주시민운동가상을 수상할 정도로 시민주도형 문화사업의 전범을 보여주었고 문화도시 사업은 전국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원주에 자발적 시민문화라는 샘물이 솟아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원주에서 30년을 사는 동안 최근 몇 년만큼 문화적 효능감과 자긍심을 느낀 적은 없었다. 아카데미 사업이나 문화도시 사업은 작은 것, 오래된 것도 충분히 가치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문화도시’의 본질이 무엇인지 단초를 보여주었다. 오래 방치돼있던 극장을 청소하는 자원봉사로 참여하거나 1인 1석 갖기 모금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동참한 시민들은 원주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키우며 성장해 왔다.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테마가 있는 카페, 작은 서점과 골목길들이 소개되고 공간을 매개로 시민과 시민, 시민과 공간들이 서로 연결되며 새로운 원주문화의 원형과 정체성을 만들어온 것이다.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다큐와 영화가 만들어지고 전국 문화예술인들의 지지와 연대를 끌어내기도 했지만 제일 큰 성과는 원주시민들이 스스로를 재발견했다는 점이다.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로 이주해온 젊은 이주민들이 정주도시로서 원주와의 연결고리를 찾고 원주 지역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이 시민들과 연결되었으며 청년들과 이어져 세대간 연대라는 희망과 공감대를 넓혀왔다. 2016년 처음 시작할 때 기성세대가 주축이었다면 현재 아카데미 보존과 재생을 희망하는 자발적 시민모임인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2-30대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추억과 기억을 얘기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아카데미’를 추억담에 가두지 않고 활용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말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이 현재와 소통하며 미래를 창조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역 문화유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니겠는가.

‘아카데미’는 60년대 극장 건축물이라는 의미를 넘어 근현대 생활상과 추억이 현재와 조우하는 도시재생의 한 모델이자 구도심 공동화 해결이라는 도시의 과제에 창의적으로 접근, 도시발전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카데미’의 역사는 2006년에 멈춘 것이 아니라 이러한 활동과 만나 더욱 다채로워졌다. 시민 개개인의 정치적·문화적 성향을 떠나 원주시민이라는 공동의 정체성으로 점과 선을 이어온 성과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며 이미 ‘아카데미’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그래서 ‘아카데미’는 단지 단관극장 하나 살리자는 것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록할 것인가, 도시재생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원칙의 문제인 것이다. ‘아카데미’를 철거한다면 이는 2006년 폐관한 단관극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새로 써온 9년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설악산만의 이슈가 아니듯 ‘아카데미’라는 이슈가 전국적인 이슈인 이유다.

한류 밑거름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한다’는 문화정책

영화 <시네마 천국>은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토토의 세대를 넘는 우정을 다룬 영화로 영화의 상징처럼 회자되는 작품이다. 영화에서 극장 시네마천국은 공공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폭파되고 마을 주민들은 눈물을 흘린다. 공교롭게도 원주시도 낡은 ‘아카데미’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주차장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민모임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시민의 서명을 받아 조례에서 보장한 시정정책토론을 청구했지만 원주시는 실정법에 어긋나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어제 인수위 시절 사업중단 방침을 발표한 이래 첫 만남을 가졌지만 시민이 청구한 숙의민주주의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 같다.

예술작품에 격렬하게 환호했던 스탕달은 토론이 없는 곳에서는 저항은커녕 이의제기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했다. 시민이 내는 세금 시민이 쓴다는데 시민의 대리인이 숙의과정도 없이 결론부터 내리고 제동을 거는 것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있던 일이며 선출권력이라는 이유로 독단적 행정을 펴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정치가 시민통합에 기여하지는 못할망정 시민의 자생력을 폄훼하고 갈등을 조장해서야 되겠는가. 문화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며 관치의 대상이 아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문화정책에 대한 원칙이 오늘날 한류라는 문화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